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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월드리포트

말레이시아 일상의 노동자를 그린 화가들

2020-05-12

매년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Labour Day)이다. 근로자의 날은 1886년 5월 미국에서 일어난 헤이마켓 사건에서 시작됐다. 당시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을 보장하고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해달라면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3일 경찰 발포로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다음날 경찰에 폭탄이 날아들면서 경찰 1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결국 5일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대규모 사상자를 내고 만다. 이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근로자들의 노동 권리를 개선하자는 의미에서 1890년 5월 1일부터 일 8시간 근무조건을 시행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 각국에서는 매년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해오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1972년 5월 20일 이스마일 압둘 라만 부총리가 근로자의 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겠다고 선포한 이래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근로자의 날을 국가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으며, 1994년 근로자의 날 위원회가 세워진 뒤로는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근로 조건 개선을 주장하는 집회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집회와 기념행사가 모두 취소됐지만, 말레이시아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근로자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Fahmi Reza의 작품 (사진제공: Fahmi Reza)

 

 

올해 근로자의 날을 맞아 작가 파흐미 레자(Fahmi Reza)는 코로나19에 따른 이동제한령(MCO)과 상점 영업 금지 등의 조치로 어려운 처지에 처한 근로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파흐미 레자는 코로나 사태 여파로 임금이 삭감되거나 해고통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말레이시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코로나19로 향후 240만 명이 실직할 것으로 예측하며,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일용직 또는 비숙련 노동자일 것으로 전망했다. 

 

Live and Survive series by Pangkor Sulap, 2019 (사진제공: Pangkor Sulap)

 

 

 

사바 지역의 예술가 모임 팡그록 술랍(Pangrok Sulap)은 근로자의 날을 맞아 페이스북에 자신의 작품을 올렸다. 팡그록 술랍은 예술을 통해 정치, 부패,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임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시하는 단체다. 팡그록 술랍은 2019년 홍콩에서 선보인 ‘살아가자 생존하자(Live and Survive)’ 작품전에 출품했던 농부의 모습이 묘사된 작품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의 작품에는 ‘노동절’을 뜻하는 ‘메이데이(Mayday)’라는 문구와 생계를 위해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말레이시아 농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Rajun, Gardener by Wong Hoy Cheong, 1996 (사진출처: Star2)

 

 

옹 호이 총(Wong Hoy Cheong)의 1996년 작품인 <정원사 라준(Rajun, Gardener, 1996)>은 근로자의 날에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페낭 출신인 옹 호이 총은 말레이시아의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이름 없는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를 주장해왔다. 그는 1996년 ‘이주민과 고무나무(Of Migrants And Rubber Trees)’라는 단독 전시회를 열어 말레이시아 경제를 뒷받침하는 고무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민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주민과 고무나무 전시회 작품 중 하나인 <정원사 라준>은 누가 잔디를 깎아줬는지, 정원사의 이름은 알고 있는지를 물으면서, 노동자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지만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회에 무게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Newspaper Seller by Chia Yu Chian, 1982 (사진제공: Ilham Gallery)

 

Hospital Reception Desk by Chia Yu Chian, 1980 (사진제공: Ilham Gallery)

 

Under the Treatment, 1977 (사진제공: Ilham Gallery)

 

 

1936년 조호에서 출생한 전설적인 화가 치아 유 치안(Chia Yu Chian)의 작품도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회자된다. 치아 유 치안은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에서 그림을 공부한 최초의 말레이시아 예술가다. 그는 쿠알라룸푸르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그림 속 인물의 삶과 영혼까지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밝혀왔다. 그의 신념은 쿠알라룸푸르에서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들을 그린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신문 판매원(Newspaper Seller, 1982)>에서는 1980년대 말레이시아 길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소년을, <치료 중에(Under the Treatment, 1977)>라는 작품에서는 1970년대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의사의 삶이 담겨 있다.

 

말레이시아 초기 예술가인 호세인 으나스(Hoessein Enas)의 작품에도 말레이시아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1963년 쉘(Shell)이 출판을 기획해 <말레이시아인(Malaysia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으며,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 총리는 이 책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이 책에는 말레이시아 노동 현장 곳곳의 사람들이 묘사됐다. 

 

말레이시아항공의 승무원과 조종사. 말레이시아 국적기인 말레이시아항공은 1947년 5월 1일 첫 승객을 태우면서 공식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말레이 전통복인 끄바야(kebaya)와 사룽(saroung)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눈에 띈다. (사진제공: Kevin Bathman)

 

사바의 도로를 만드는 사람들. 1960년대 중국 남부 출신의 이민자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바로 건너와 건물과 학교를 지었다. 강렬한 태양을 피하기 위해 넓은 챙의 모자를 쓴 여성 노동자들이 보인다. (사진제공: Kevin Bathman)

 


끌란탄의 은공예사. 은공예로 알려진 끌란탄 지역의 은공예사가 그려져 있다. 당시 말레이시아 왕궁은 전통 검인 크리스(keris)의 칼집과 보석 상자, 식기 등의 제작을 끌란탄 출신의 장인에게 맡기곤 했다. (사진제공: Kevin Bathman)

 


카메론 하이랜즈의 찻잎 뜯는 사람들. 오랜 기간 말레이시아를 식민지배한 영국은 1930년대 파항주의 카메론 하이랜드를 차 재배지로 개발했다. 초기에는 스리랑카 실론 지역의 이주민을 고용해 차 지배지를 점차 확장했다. 찻잎을 뜯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제공: Kevin Bathman)

 

 

우리의 삶은 항상 노동자와 연결돼 왔다. 하지만 수많은 노동자가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종종 잊게 된다. 말레이시아는 중국과 인도 등지에서 이주한 이민자와 말레이계를 포함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다. 많은 노동자가 주석광산과 고무 플랜테이션 등에서 일해 오늘날의 말레이시아를 만들었으며,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힘써온 덕에 과거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존재감도 없이 사라졌을 노동자의 삶은 예술가들의 애정 어린 작품 속에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게 됐다. 다양한 노동자를 담아낸 이들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글_ 홍성아 말레이시아 통신원(tjddk42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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