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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스토리×디자인] 디자인이 공기를 활용하는 6가지 방법

2019-07-31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존재. 그러지만 도처에 어디에나 있고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존재 - 공기. 지구상에 공기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심취하여 사색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온 그 천상의 존재 공기는 현대 디자이너들이 눈여겨보면서 창조에 응용하는 소재이며 매개체이자 개념적 영감이다.

 


건축가 티아고 바로스(Tiago Barros)의 프로젝트 〈지나가는 구름(Passing Cloud Street View)〉은 구름을 빌어 미래의 여행, 이동, 덧없음을 표현한 콘셉트 설치작품이다. 2011년 ⓒ Tiago Barros

 

 

인류는 과학의 진보, 정치 경제 사상의 변화, 문화의 발명을 거치면서 공기와 연관된 우리 인간의 관념과 상상력을 투영시켰다. 공기는 문학, 미술, 음악을 포함함 예술가들에게도 창조의 영감을 줬다. 그런가 하면 세상만사가 디지털화된 21세기, 공기만큼 현재를 잘 은유하는 사회문화적 실체가 또 있을까? 독일의 현대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21세기를 ‘거품(foam)의 세기’라 정의하고, 인류는 다양한 생활과 형태의 깨지기 쉽고 불안정하며 일시적인 ‘거품’, ‘구형체’ 또는 ‘기포 방울’ 속에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문학 이론가 스티븐 코너(Steven Connor)는 ‘공기란 언제나 공기 그 이상 또는 그 이하의 무엇’이라고 본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아서 종잡을 수 없는 불가사의함 못지않게 어느 한순간 사라지거나 균형을 잃으면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마력도 지닌 양면적 존재다. 가볍고, 덧없이 부유하고, 일시적이지만 대기 중 혼성된 여러 기체의 성분과 배합 비율에 따라 우리 몸에 유익한 양분이 될 수도, 상상을 초월하는 맹독성이나 폭발성을 발휘할 수도 있는 기체 칵테일이기 때문이다.

 


마아르텐 드 슬레어(Maarten de Ceulaer)가 디자인한 클럽 체어(Club Chair) ⓒ Maarten de Ceulaer

 

 

1) 빈속을 채워주기
공기가 각종 디자인 제품의 필러(filler)로 응용되기 시작한 때는 1960년대. 낙관적이고 자유로운 시대적 분위기와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실험정신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당시, 플라스틱 소재와 부풀리기가 가능한 저렴한 가격대의 PVC 소재 가구 디자인이 탄생했다. 베트남계 프랑스인 공학자 카사르 칸(Quasar Khanh)은 껍질 속에 공기를 팽팽하게 주입하여 의도한 형태를 가하는 기법으로 탄생하는 인플레이터블(inflatable) 가구 시리즈 〈아에로스페이스〉를 디자인했다. 그의 아에로스페이스 가구는 반항주의 영혼이 담긴 20세기 디자인사에 남아 오늘날 친환경주의 디자이너들의 영감이 되고 있다.

 


벨기에의 디자이너 얀 뵐렌(Jan Boelen)은 진정으로 환경친화성을 고려하는 디자인은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생분해 바이오플라스틱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MALAFOR, PAPER+ ARM CHAIR, 2015 ⓒ Pawel Pomorski

 

 

1960년대는 생태학적 위기에 대비해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기 시작한 때였다. 공기는 천연자원의 부족에 미리 대비하고 절약하기 위해 사물과 오브제의 부피를 가장 환경친화적으로 부풀릴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어디서나 큰 운반 비용이나 공해 없이 확보 가능하고 더없이 가벼운 환경친화적 필러(filler)가 될 수 있다. 폴란드의 디자인 브랜드인 말라포(Malafor)의 버려진 종이 포장재를 재활용해 만든 종이봉투에 공기를 넣은 편안하고 환경친화적인 좌석용 가구는 그런 예다.

 


디르크 바이난츠(Dirk Wynants)가 디자인한 〈도넛(Dount)〉 테이블 겸 의자 솔루션은 공기를 필러로 활용했다. 2015년 ⓒ Isabel Rottiers

 

 

2) 제조 공법으로서의 공기
공기는 그 자체로 무형이지만 다른 소재에 형태를 가하는 조형과정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유리 불리기공법은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물렁하게 녹은 상태의 유리 거품 안으로 공기를 불어넣으면 유리는 부풀면서 형태가 잡힌다. 일본의 디자이너 넨도(Nendo)의 〈이너 블로우(Inner blow)〉 테이블은 그 같은 원리를 이용해 제작됐다.

 


넨도가 직물 속에 공기를 불어넣어 제작한 〈블로운 패브릭(Blown Fabric)〉 2009년 ⓒ Masayuki Hayashi

 

 

재스퍼 모리슨이 마지스 가구사를 위해 제작한 〈공기 의자(Air Charir)〉는 주형에 액상 플라스틱과 가스를 주입해 형상을 조형하는 기법으로 제작됐다. 공기를 불어넣어 형태를 가할 수 있는 소재로는 유리 말고도 동물 가죽, 천연 및 인공 합성 섬유, 심지어 금속도 포함된다. 오스카 지타(Oskar Zieta)는 FIDU 공정 과정을 창안했다. 매우 얇은 금속 시트를 용접해 접착시킨 후 안쪽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3차원 형태로 조형한다. 공기 주입식 공법은 최종 제품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고 재료를 대폭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오스카 지타가 디자인한 〈지타 바즈에너(Zieta BazAir)〉 설치작 광경 ⓒ Simona Cupoli

 

 

3) 대기 오염 감축 솔루션
미세먼지와 유해 성분으로 가득한 대기오염은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지구상 전 세계 인구 10명 중 9명은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인구 대부분은 공기가 나쁜 도시에서 생활을 하며, 더러운 공기는 폐, 심장, 뇌 건강을 해친다.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은 생소한 광경이 아니다. 기왕 써야 할 마스크라면 패셔너블한 거리 패션 액세서리로 승화해 보자는 시도는 〈에러리눔(Airinum)〉 프로젝트를 선언한다. 필리페 타베(Phililppe Tabet)도 베네치아 가면을 세련되고 눈에 띄는 패션 아이템으로 전환시켰다.

 


(왼쪽)카메이 준(Jun Kamei)은 미래 인류가 기후온난화로 수중 생활을 하게 될 것이란 가능성에 대비해 수중에서도 산소를 공급해주는 〈암피비오(Amphibio)〉 인공호흡기를 고안했다. 2018년 ⓒ Jun Kamei. (오른쪽)필리페 타베(Philippe Tabet)가 베네치아 가면을 보건용 마스크로 전환시킨 〈메디코 델라리아(Medico dell'aria)〉2018년 ⓒ Philippe Tabet, ⓒ Laila Pozzo per Doppia Firma

 

 

그러나 역시 대기 오염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점 해결을 찾아서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공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줄리언 멜키오리(Julian Melchiorri)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줄이고 산소량을 늘이기 위해 인공 태양합성을 시도한다.

 

4) 바람과 소리 - 공기는 항상 움직이는 것
공기가 움직이면 바람을 일으키며 대기를 시원하게 해주는 효과를 낸다. 제품 디자이너들은 해마다 무더워지는 여름철에 사용될 선풍기를 재해석하고 개선한 쿨링 공기순환기 디자인에 한창이다. 전설적인 산업디자이너 마르코 자누소(Marco Zanusso)의 〈아리안테(Ariante)〉 휴대용 선풍기를 비롯해서, 마르텐 바아스(Marten Baas)의 합성 〈진흙 선풍기〉와 줄리언 카레테로(Julian Carretero)가 디자인한 리본 모양의 선풍기 날개는 인공적으로 공기를 움직여 냉방 효과를 창출하는 기체 역학을 응용한 디자인이다.

 


줄리언 카레테로(Julien Carretero)가 디자인한 선풍기 〈이것은 선풍기다(This is a fan)〉 2008년 ⓒ Julien Carretero

 

 

공기는 기압의 이동과 압력에 따라 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 같은 원리를 이용해 인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피리, 트럼펫 같은 관악기를 발명해 음악을 창조했다. 알레시를 위해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el Graves)와 리쳐드 새퍼(Richard Sapper)가 디자인한 주전자는 물이 끓으며 올라오는 증기로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나는 공기를 청각화한 디자인 혁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오늘날 공기는 때론 추상적인 콘셉트 디자인의 영감이 되기도 한다. 디자이너 필립 베버(Philipp Weber)는 그 같은 원리를 응용해서 불어서 만든 유리관에 밸브를 달아 유리공예 장인이 유리를 불 때 관 속 기류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는 제작 도구를 고안했다. 필립 베버, 〈기괴한 교향곡(A strange symphony)〉 2013년 ⓒ Philipp Weber

 

 

5) 충격 완충제로서의 공기
물놀이용 튜브, 구명조끼와 에어백은 모두 일상 속에서 닥칠 수 있는 위기의 순간 우리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는 안전 용품들이다. 이 제품들의 공동점은 버블이나 쿠션에 담으면 물에 뜨고 충격을 흡수하는 공기의 습성을 활용한다. 카트린 존라이트너(Katrin Sonnleitner)가 디자인한 재활용 카펫은 버블랩을 재활용해 켭켭이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으로부터 전달되는 물리적 충격과 온도를 차단해주는 카vpt 본연의 기능을 선사할 수 있는 재활용 사례다.

 


카트린 존라이트너가 디자인한 〈버블랩 양탄자(Bubble wrap rug)〉 2008년 ⓒ Katrin Sonnleitner, ⓒ Gen Higashikawa

 

 

그런가 하면 공기는 열과 전도력이 낮다. 공기를 통해서 뜨겁거나 찬 온도는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 단점을 역발상 하면 공기는 이상적인 단열용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 이미 우리 주변 현대건축에는 벽과 벽 또는 유리와 유리 사이를 비워둔 이중벽 또는 이중창이 단열 및 소음 차단에 활용되고 있다. 네다 엘-아스마르(Nedda El-Asmar)와 세바느티안 베른(Sebastian Bergne)이 디자인한 이중벽 원리 커피컵과 사발은 공기 차단 방식으로 보온력을 높였다.

 


네다 엘-아스마르가 디자인한 공기 보온식 사발 〈크리올로(Criollo for Carl Mertens)〉 ⓒ Nedda El-Asmar, ⓒ Wolf&Wolf

 

 

6)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참을 수 없는 공기의 가벼움
부유하고, 가볍고, 때론 바람이 되고, 뜨거운 물과 섞이면 수증기가 되었다가 공중으로 흩어져 하늘로 상승하여 구름이 되는 공기. 프랑스의 인식론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그의 책 〈공기와 꿈(L’air et les songes)〉에서 공기의 그 같은 물리적 특성을 관찰하고 시적으로 묘사했다. 

 

그토록 가볍고 꿈결 같은 공기를 풍선만큼 시각적으로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 사물이 또 있을까?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가 디자인한 〈탄소 풍선 의자(Carnon Balloon Chair)〉는 깃털처럼 가볍지만 1백 킬로그램 안팎의 몸무게를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견고함을 보여준다. 


마르셀 반더스가 디자인한 <탄소 풍선 의자(Carbon Balloon Chair)> 2014년 ⓒ Marcel Wanders

 

 

공기는 공짜다. 적어도 아직까진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벌써 수 년째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 오염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제 공기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위협에 처한 천연자원임을 절실히 깨달을 때가 됐다. 현대 디자이너들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중대한 생존 문제에 대한 해결사로써 대안을 제시할 도전거리를 떠안았다.

 

공기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나? 우리는 공기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 그리고 공기를 둘러싼 인류에게 던져진 문젯거리를 디자이너는 어떻게 지각하고 해결해야 할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신비롭고도 소중한 공기에 대해 사색해 보고 다양한 디자인적, 기술적 솔루션의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는 전시회 ‘공기에 대한 디자인(Design on Air)’전은 벨기에 그랑-오르뉘 혁신센터 디자인 박물관에서 10월 13일까지 계속된다. 

 

글_ 박진아 미술사가·디자인컬럼니스트(jina@jinapark.net)
Images courtesy: Centre for Innovation and Design at Grand-Hor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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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칼럼니스트
미술평론가, 디자인 및 IT 경제 트렌드 평론가, 번역가이다. 뉴스위크 한국판, 월간디자인의 기자를 지냈고,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미국미술관, 뉴욕 모마,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갤러리에서 미술관 전시 연구기획을 했다. 현재 미술 및 디자인 웹사이트 jinapark.net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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