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8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커피로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를 시작했더랬다. 커피를 마셔야만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 커피는 아침을 깨워주고 지친 일상에 에너지를 주는 비타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통 잠을 이루지 못해 카페인 금지령을 받았고, 이제 커피 없이 매일을 보내는 데 제법 익숙해졌다. 하지만 매일 아침 지나치는 카페에서 풍기는 커피 향기는 커피와 함께했던 추억을 너무나 생생히 떠오르게 한다. 마법과도 같이 긴장된 얼굴의 근육을 이완시켜 미소를 짓게 하는 커피 향기. 그래서 여전히 ‘커피’하면 귀가 쫑긋한다.
이해나 작가의 ‘커피보고서’
‘커피보고서’는 진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여기엔 씁쓸한 맛이 매력적인 아메리카노부터 포근한 거품의 마키아토, 달달한 자판기 커피까지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등장한다. 이해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커피보고서(COFFEE REPORT)〉 시리즈 얘기다.
이해나 작가는 2015년부터 ‘커피보고서’ 작업을 하고 있다. 다소 뒤늦게(?) 커피의 세계에 입문한 작가는 누구보다 열렬히 커피를 사랑하게 됐고, 매일 커피를 마시며 커피를 그리고 기록한다.
‘커피보고서’엔 작가가 마신 커피 그림과 함께 방문했던 카페의 이름과 주소, 커피의 종류, 가격 등 세부적인 정보도 적혀있어 그곳이 어떤 곳일지, 커피 맛은 어떨지 상상하는 재미를 준다. 테이크아웃 잔, 심플한 머그잔, 멋스러운 도자기 잔 등 여러 스타일의 컵 모양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2018년 04월 22일 gs25 카페라떼
2018년 04월 26일 카페키츠네 아이스아메리카노
2018년 05월 05일 약초원 오미자차
2018년 05월 16일 디저브커피 아이스핸드드립
오늘의 보고서
2016년 10월 05일
“17도씨”
주소 서울 마포구 연남동 257-21 1F
오늘 마신 음료 초콜릿 소프트 아이스크림 (₩3,800)
음료의 종류도 많다.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캔커피나 직접 내리는 원두커피도 등장한다. 티 종류나 아이스크림도 보인다. 오랜 시간 작업했지만 같은 그림은 한 장도 없다.
코로 맡는 커피에 눈으로 보는 커피가 더해져 (여전히 마시진 못하지만) 실컷 커피를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다음은 커피의 달콤, 쌉싸름한 맛 그 이상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이해나 작가와의 Q&A.
2018년 03월 01일 노에이 버터버터꼬레또
2018년 03월 06일 포비 베이직 아이스롱블랙
2018년 03월 07일 패턴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핸드드립
2018년 03월 14일 엘레브 아메리카노
안녕하세요. 먼저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커피를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이해나입니다.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세요? 특별히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매일 한 잔씩은 꼭 마시는 것 같아요. 사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어요. 20대 초반에는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거든요. 남들처럼 커피를 즐기고 싶어서 아침에 의무적으로 한 잔씩 마셔보기도 했는데 적응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뉴욕에서 학교에 다닐 때 ‘어빙 팜(Irving Farm)’이라는 카페에서 기존에 마시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커피 맛을 경험하게 됐어요. ‘커피가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싶어 한두 잔씩 마시다 보니 이젠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네요.
2017년 06월 14일 쉬즈베이글 아이스아메리카노
2017년 02월 17일 리이슈 에디오피아네키세
오늘의 보고서
2017년 01월 18일
“사이커피”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 227-38
오늘 마신 음료 시그니처 시나몬 커피 (₩5,500)
가장 좋아하시는 커피는 어떤 커피인가요?
저는 한겨울에도 차가운 음료를 마시는데요, 우유가 들어간 음료는 마시고 나면 입안이 텁텁해져서 선호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년 365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만 마시게 되네요.
‘커피보고서’ 작업을 꽤 오래 해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커피보고서’의 첫 시작은 저의 개인적인 ‘수집벽’과 ‘소재 고갈’에 대한 핑계를 없애기 위함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과 ‘월간 벗’이라는 창작집단을 만들어 매달 마감일을 정해놓고 그림을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매번 그림의 소재를 생각해내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마침 커피를 매일 마시고 있기도 하고, 그림 연습도 할 겸 ‘내가 마신 커피를 그리면 어떨까?’ 생각했죠.
거기다 제 작업실이 있는 홍대 근처에는 맛있다고 소문난 카페가 많으니, 하나씩 도장 깨듯 방문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오늘의 보고서
2015년 12월 05일
“작업실”
오늘 마신 음료 작설차 (₩2,500/box)
오늘의 보고서
2016년 01월 27일
“브루브로스 커피”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68-30
오늘 마신 음료 아인슈페너 (₩5,500)
보통은 늘 가는 카페에 가서 매일 같은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의 커피보고서엔 똑같은 커피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림을 위해 일부러 새로운 시도를 하시나요?
카페는 항상 새로운 곳을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에 갔던 카페는 되도록 제외하고, 방문한 적이 있는 곳을 가더라도 다른 음료를 마셔서 같은 메뉴는 그리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아는 한 커피보고서에 여러 번 간 카페는 있어도 똑같은 잔에 담긴 똑같은 메뉴는 없을 거예요. 매우 많이 신경 쓰고 있거든요.
중복되는 것은 일부러 피해서 그리고 있어요. 일단 중복되면 그릴 때부터 재미가 없어요. 보는 사람들도 지루할 것 같고요.
오늘의 보고서
2016년 10월 10일
“대루커피”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428-4
오늘 마신 음료 라떼 마끼아또 (₩5,000)
새로운 커피를 그리기 위한 그런 노력들이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세상에 카페는 많고, 음료는 더욱더 많죠.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매년 홍대 근처의 카페가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데요, 그래서인지 아직도 방문해보지 못한 카페가 너무 많아요. 딱히 소재에 대한 부담감이나 어려움은 없어요. 다만, 새로운 카페를 방문하지 못했거나 매일 똑같은 잔에 음료를 마셨다거나 하는 달엔 마감 직전에 급하게 새로운 카페를 찾아서 방문하기도 한답니다.
카페를 가는 것 외에 ‘커피보고서’를 위해 일상적으로 하시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주기적으로 카페 검색을 하고 메모를 해 둬요. 길을 가다가도 카페들을 유심히 보는 편이고요, ‘이번 달엔 꼭 여기에 와봐야지‘ 다짐하면서요.
이해나 작가는 종이나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어떤 도구들로 그리시나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요. 종이와 캔버스를 번갈아 가며 쓰고 있는데, 요즘은 캔버스처럼 가공된 종이를 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두께감 있는 수채화 용지에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좋아요.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커피를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더 큰 호응을 받으실 것 같아요.
솔직히 이렇게 좋아해 주실지 정말 몰랐어요. 그래서 일러스트페어 첫 참가에는 굿즈도 많이 만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엽서를 구입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으시더라고요. 생활창작가게 key에서 입점 제안을 받기도 했고요.
그림으로 기록한 메뉴 자체가 많고, 익숙한 브랜드들도 있으니까 그림을 보시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메뉴를 찾아보기도 하고, 특정 메뉴를 좋아하는 지인을 위해 엽서를 구매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의 개인적인 기록들의 나열이라 생각했는데, 보시는 분들은 그림에서 자신의 추억이나 경험을 읽어내시더라고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오늘의 보고서
2015년 10월 19일
“작업실”
오늘 마신 음료 아이스 아메리카노 (₩0)
지난달 생활창작가게KEY에서 열린 기획전에서는 직접 사용하시는 커피 도구들도 전시가 됐는데, 어떤 물건들인가요?
카페를 가지 못하는 날엔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요, 그 때문에 집에서 사용하는 커피용품도 ‘커피보고서’에 자주 등장해요. 커피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커피 테이블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실 것 같기도 했고요, 제가 그린 그림과 실제 오브젝트를 함께 보여준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용품들만 엄선해서 가져다 놓았어요.
앞으로도 ‘커피보고서’ 작업을 이어나갈 생각이세요?
네! 제가 홍대를 떠나는 그날까지 쭉 이어갈 생각이에요. 아직 가보지 못한 카페도 너무 많고, 태어나서 뭐든 하나 꾸준히 하는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하하.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홍대만이 아닌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커피보고서’를 완성해보고 싶어요. 일을 핑계 삼아 여행도 하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요.
더 나아가서는 커피와 함께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보고 싶어요. 제 그림을 보시는 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보면 좋을 것 같거든요. 또, 카페나 바리스타 분들과의 협업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에디터_ 최유진(yjchoi@jungle.co.kr)
사진제공_ 이해나(www.leehae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