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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선 개인전: 연극
미술

무료

마감

2013-06-21 ~ 2013-07-11


전시행사 홈페이지
www.nextdoorgallery.co.kr



전현선 개인전: 연극             
Hyunsun Jeon: Play
2013. 6.21 - 7.11

옆집갤러리 NEXT DOOR GALLERY   
www.nextdoorgallery.co.kr     
작품문의: 02-730-2560



연극_새들의 기억

이것은 아주 오래 전에 저기 저 파랗게 반짝이는 바다 건넛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 마을은 밤이면 별이 빼곡히 손을 뻗어 닿을 듯 말듯 반짝였으며, 낮에는 새들의 노래가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했고,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했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마을이 잠든 사이 새벽녘에는 아주 느리고 조용히 내리는 이슬이 땅을 적셨고 이윽고 새들이 울고 날이 밝으면 모든 잠자는 것들이 깨어나 춤을 추었습니다. ● 마을 한가운데는 정원이 있었고, 그 정원의 한가운데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나무에는 흰 가면을 머리에 쓴 소년이 살고 있었는데, 그 나무는 소년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소년의 나이였을 때부터 사는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사는 나무에서 가까이 예쁘고 지혜를 사랑하는 소녀와 그 소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은 언제나 새들의 노래가 가득했고 나무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란 덕에 소년은 새들의 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 소년은 저 멀리 바다 건너나 산 너머에서 새들이 보고 온 것을 마을 사람에게 전해 불필요한 실수를 하지 않게 하였으며, 여행을 갈 때 길을 잃고 헤매지 않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혜에 관한 사랑이 너무나 컸던 소녀는 새들이 알려주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언제나 잠들기 전이면 나무에 기대앉아 “저 별들이 더 오래 전부터 보아온 세상의 비밀이 알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 소년은 별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빛에서 아침이면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수박풀꽃의 사랑스러움을 느꼈고, 귓가에 닿는 그 목소리에 마음은 갈대풀 꽃처럼 흔들렸습니다. 아무튼, 마을은 소녀의 지혜에 대한 간절한 애틋함을 빼고는 모두가 너무나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녹색 치마의 여자가 목에는 흰 깃을 하고 손에 하얀 뱀을 쥔 채 하얀 모자를 쓴 네 명의 소년과 마을에 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 여자는 새들이 저 멀리 바다 건너나 산 너머에서 보고 온 것을 소년에게 말하기 위해 나무로 모이는 것을 보고 그 나무가 갖고 싶었습니다. 여자가 소년에게 묻습니다. “밤마다 소녀가 바라보는 것이 별이 아니라 너였으면 좋겠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나무에서 내려오라. 그리고 그 나무를 나에게 주면 소녀가 너를 바라보게 하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 소년은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대답합니다. ● “이 나무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나와 같은 나이였을 때부터 살아온 집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여자는 돌아섰고 소년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일었습니다. ● 그날 밤, 나무에 기대앉아 별을 바라보는 소녀에게 여자는 말합니다. “세상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지혜가 갖고 싶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땅 위에 살아가는 것들의 모든 호화로운 권위와 그것의 신분을 바꾸는 영력(營力)은 산양의 뿔에 속해 있다. 초승달이 뜨는 날 머리에 뿔을 쓰고 산양을 만나라. 그리고 그 권위와 영력을 얻도록 하라. 너는 그리하여 지혜를 생산하는 부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소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잊지 마라. 초승달이 뜨는 날이다. 머리에 뿔을 쓰고 산양의 뿔에 더하여, 네 개의 뿔을 이루어야 한다.” ● 여자의 옆에 있던 흰 모자를 쓴 네 명의 소년이 합창하였습니다. ● 이윽고, 초승달이 뜨자 여자는 자신의 팔을 뱀이 물게 하였습니다. 뱀이 여자의 팔을 물자 여자는 산양으로 모습이 바뀌었고, 소녀는 머리에 뿔을 쓰고 산양을 만나 밤새도록 춤을 추었습니다. 소년은 소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싫어 깊은 상심에 빠졌고, 날이 밝자 소녀 역시 산양의 영력으로 부귀를 잉태하였지만, 지혜를 얻을 수 없음에 상실과 허망함으로 문을 걸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 며칠이 지났지만, 소녀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실의에 빠진 소년에게 새들은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새들은 더는 노래하지 않았고 그 삭막함에 이슬은 말라 버렸습니다. 날이 밝아도 꽃이 피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더는 누구를 만나도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다시 소년을 찾아왔습니다. “소녀가 다시 이 나무를 찾아왔으면 좋겠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뱀을 소녀에게 가져다 주어라. 뱀이 소녀를 다시 이 나무로 이끌 것이다. 하지만 뱀을 절대로 바닥에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이때, 노란 옷을 입고 어깨에 나비의 날개를 한 나무의 정령이 나타나 여자의 말을 듣지 말 것을 경고하였지만, 소년의 손에는 이미 뱀이 쥐어져 있었고 발길은 소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 소년의 등 뒤에서 흰 모자를 쓴 네 명의 소년이 부르는 합창이 소년의 귀에 울려 쳤습니다. “뱀이 소녀를 다시 나무로 이끌 것이다. 하지만 뱀을 절대로 바닥에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소년은 뱀을 소녀에게 전하며 말하였습니다. “이 뱀이 세상의 비밀을 알려 줄 거야. 하지만 절대로 뱀을 바닥에 내려놓아서는 안 돼.” 소녀는 뱀을 받았고 소년은 나무로 돌아왔습니다. 소년이 돌아가고 뱀이 소녀의 팔을 물자, 소녀의 어깨에서 나비의 날개가 돋았습니다. ● 소녀는 뱀을 언니에게 맡기며 말하였습니다. “이 날개가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저 별로 나를 데려다 줄 거야. 뱀을 바닥에 내려놓아서는 안 돼.” 소녀는 별을 향해 날기 시작하였습니다. 소녀는 열심히 날갯짓하였고 별은 점점 더 가까워졌습니다. 소녀는 힘이 들었지만,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는 저 별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소녀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가면 저 별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채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소녀는 지쳐 더는 날갯짓 할 수 없었습니다. ● 소녀는 바로 눈앞에 별을 두고 더 날 수 없는 것이 슬펐습니다. 소녀는 소년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소년이 준 뱀이 내 팔을 물어서 이 날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날개가 있어 저 별에 가까이 갈 수 있었지만, 이 연약한 나비의 날개로 별에 갈 수는 없었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소년은 소녀가 나무로 돌아온 것이 기뻤지만, 소녀의 눈물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소녀가 말했습니다. “나비의 날개는 연약하여 별에 도착할 수 없었지만, 새의 날개라면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어깨에 있는 이 나비의 날개 때문에 나는 새의 날개를 가질 수 없어” ● 여자가 옆에서 말했습니다. “나비의 날개는 소년이 사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 내면 뗄 수 있다.” 마을의 모든 새가 모여 불안과 의심의 눈빛을 보였지만, 소년은 어느새 달려가 돌을 주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돌로 나무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러자 나무가 들었던 수많은 새의 이야기는 온갖 비명으로 바뀌어 나뭇가지를 통해 별빛과 같이 영롱한 빛으로 솟구쳐 소녀의 등에 있는 나비의 날개를 태웠습니다. ● 소녀는 소년에게 두 손을 모아 감사함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새의 날개를 달기 위하여 뱀에게로 가려 했습니다. 옆에 있던 여자가 다시 말합니다. “새의 날개로는 별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날개의 그림자에 가려 별이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이 가릴 수도 있으니, 차라리 저 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무를 베어 별을 따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 소년은 이제 더는 소녀가 슬픔에 잠기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서슴없이 나무를 베어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소녀는 소년에게서 나무를 받고 이제 곧 별이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것에 기쁜 나머지 소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잊은 채 별을 따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 그날은 유난히 하늘에 별이 가득하여 별빛이 닿을 듯 말듯 하이얀 밤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언니도 소녀와 함께 별을 따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기쁜 나머지 뱀을 바닥에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바닥에 놓인 하얀 뱀은 이내 두 마리의 분홍빛 실뱀으로 몸을 나누어 도망쳤습니다.    ● 소녀가 떠나고 여자는 나무를 밑동째 뽑아 옮기어 집을 짓기 위한 나무-구조를 세웠고, 소년은 돌을 하나 더 가져다 나무가 원래 있던 자리에 놓고 나무껍질을 벗기었던 돌을 그 옆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옆에 떨어져 있는 나무의 토막을 주워 다리처럼 올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소녀가 이 다리처럼 저 별이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에 닿을 수 있을 거야.” 소년의 말이 끝나자 나무토막의 상처에 빨간 피가 맺혔고, 소년이 흘린 눈물과 함께 나무가 들었던 새들의 모든 이야기가 반딧불처럼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팔을 뻗어 그 닿을 듯 말듯 보이던 별을 하나도 딸 수 없었습니다. ● 소녀는 밤이 새도록 나뭇가지를 들고 허공을 휘저었지만 단 하나의 별도 따지 못한 채 지쳐 쓰러졌습니다.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습니다. “아! 나는 저 별에 가야만 해. 별이 보았던 세상의 비밀이 알고 싶어. 하얀 뱀아! 내게 새의 날개를 주렴.” 소녀의 언니는 그제야 뱀을 내려놓은 것을 깨닫고 뱀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세운 나무-구조에 새들이 모여들어 자신에게 저 멀리 바다 건너나 산 너머에서 보고 온 것을 말해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새들은 모두 떠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화가 났고 하얀 뱀을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 ●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소녀에게 분홍빛 실뱀이 다가왔고 소녀는 울며 애원했습니다. “나를 물어 새의 날개로 저 별에 닿을 수 있게 해주세요.” 뱀이 소녀의 종아리를 물고 수풀로 숨자 소녀는 검은 새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소녀의 언니는 뱀을 찾다가 여자를 만났습니다. 여자는 뱀을 내놓으라 했고 언니는 그만 뱀을 바닥에 놓아 놓쳤다고 말했습니다. 여자는 언니의 말을 듣고 놀라 황급히 뱀을 찾으러 달려갔고 소녀의 언니도 뱀을 찾아 달려갔습니다. 여자는 소녀의 언니에게 소리쳤습니다. “뱀을 찾거든 나에게 가져와라. 그렇지 않으면 소녀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야.” ● 수풀에 숨어 있던 뱀에게 소녀가 별을 딸 수 있었는지 소년이 물었습니다. 뱀이 대답하였습니다. “소녀는 별을 딸 수 없었고 지금은 까만 새가 되어 별을 향해 날아갔다.” 소년은 뱀이 자신의 팔을 물게 하여 하얀새로 변하였고 소녀를 찾아 날아올랐습니다. ● 뱀이 소년에게 소리쳤습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여자의 하얀 깃이 필요하다.” 뱀은 다시 수풀로 숨었습니다. 여자는 또 다른 뱀을 찾아 자신의 팔을 물게 하여 빠른 발을 가진 여우로 변하였고 나머지 수풀에 숨은 뱀을 찾아 나섰습니다.    ● 수풀에 숨어 있던 뱀은 소녀의 언니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 “원래 나는 흰말이었는데 여자가 갖고 있던 분홍빛 뱀에 물려 그 뱀과 하나가 되어 크고 흰 뱀이 되었다. 여자는 저 멀리 바다 건너나 산 너머에서 새들이 보고 온 것들에 관해서 알고 싶었는데, 분홍빛 실뱀은 새들에게 잡아 먹힐 수 있기 때문에 나를 물게 하여 새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크고 흰 뱀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 와서 나무에 사는 소년이 새들과 말할 수 있는 것을 보고 그 나무를 갖는 것이 더 많은 새와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 세상에는 새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을 수 없다. 새들도 모르는 비밀을 저 별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새의 날개로도 별까지 날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녀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여자가 가진 흰 깃이 필요하다. 나를 여자에게로 데려가라. 그리고 여자의 흰 깃과 바꾸어라.” ● 소녀의 언니는 뱀을 여자에게로 데려갔습니다. 여우로 변한 여자는 뱀을 달라 하였고 소녀의 언니는 하얀 깃을 먼저 달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소녀의 언니에게서 뱀을 뺏으려 하자 하얀새로 변한 소년이 여자의 눈을 쪼았습니다. 그러자 여자의 목에서 흰 깃이 떨어져 나왔고 여자는 놀라 쓰러졌습니다. ● 소녀의 언니는, “이 깃을 가져가 소녀를 다시 사람으로 돌리자.”고 하얀새로 변한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하얀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뱀에게 자신의 날개를 물게 하여 나방으로 변하였습니다. ‘이제 새들은 나를 떠났다. 나는 소녀가 지치지 않고 별까지 날아갈 수 있게 먹이가 되겠다.’ 소녀의 언니는 소년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 나방이 날아가고 소녀의 언니가 여자의 하얀 깃으로 뱀을 감싸자 뱀은 흰말로 변하였고 소녀의 언니는 흰말과 함께 마을을 떠났습니다. 소녀의 언니가 떠난 후, 원래부터 분홍 뱀이었던 실뱀은 마을 사람을 물어 제각기 다른 동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 제각기 다른 동물로 사람들은 서로 인사하지 않았고 더는 말할 수 없게 되어 모두가 마을을 떠났습니다. 모두가 떠나자 하얀눈이 내리고 쌓이어 마을은 녹지 않는 소금성이 되었습니다. ● 새들은 그 후, 눈을 감고 있는 소년이, 물고기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잘린 산양의 머리에 난 뿔을 쥐고 있는 꿈을 꾸다가 놀래서 깨곤 하는데, 이것은 오래 전에 어떤 새가 드리운 날개의 그림자에 가려 미처 몰랐던 것들에 관한 새들의 기억이자, 바로 우리가 사는 인지상정 연극의 모습입니다.
 
- 글: 김태윤 (옆집갤러리 디렉터)

  *이 글은 전현선 작가의 그림을 보고 스치듯 떠오른 새들의 신화에 관한 단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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